자료실

20세기 물리학의 새로운 역사가 된 X-ray의 발견

  • 조회수 5476
  • 작성자 방사선화학과
  • 작성일 2021.08.09

[사이언스N사피엔스] X선의 발견, 20세기 물리학의 시작

베크렐이 방사선을 발견한 감광판 19세기 물리학의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고전 전자기학의 완성이라고 할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전자기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이런저런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진공관이었다. 유리용기에서 공기를 빼내고 잘 밀폐하면 그게 바로 진공관이다. 짐작했겠지만 얼마나 성능이 좋은 진공펌프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독일의 하인리히 가이슬러는 진공펌프를 개량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덕분에 대기압의 1만분의 1 정도의 상태를 구현할 수 있었다. 


공기도 없는 유리관을 어디에 쓸까 싶은데 과학자들은 그 속에 전극을 집어넣어서 외부 전원과 연결한 뒤에 전류를 흘려보내는 실험을 했다. 즉 진공에서의 전류의 흐름을 연구한 것이다. 1869년 독일의 율리우스 플뤼커와 그의 제자 요한 히토르프는 이때 음극에서 양극으로 어떤 광선 같은 것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흐름이 음극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음극선’이라 불렀다. 음극선이라는 이름은 1876년 독일의 과학자 오이겐 골드슈타인이 붙였다. 음극선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리관 벽에 부딪히거나 형광물질과 만나면 빛을 낸다. 이후 여러 종류의 진공관이 등장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국의 윌리엄 크룩스가 만든 '크룩스관'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음극선의 성질을 연구하면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음극선이 지나가는 경로에 십자가 모양의 표식을 넣어 두면 그 뒤편 유리면에 십자가 모양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음극선이 직진한다는 증거이다. 음극선의 경로에 잘 돌아가는 바퀴 같은 것을 설치해 두면 그 바퀴가 돌아간다. 이는 마치 흘러가는 물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과도 같다. 이는 음극선이 어떤 운동량을 가진 입자의 흐름이라면 쉽게 설명된다. 또한 음극선의 경로 주변에 자석을 갖다 대거나 전기장을 걸어 주면 음극선의 경로가 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는 음극선이 전기를 띠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전기장의 방향이나 자석의 극에 따라 휘는 방향을 따져보면 음극선은 음의 전기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음극선은 음의 전기를 가진 무언가의 흐름이다. 이는 음극선이 가시광선과 같은 빛 또는 전자기파가 아님을 뜻한다. 빛 자체는 전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을 응용한 것 중의 하나가 브라운관이다. 요즘은 TV나 모니터가 거의 모두 액정디스플레이(LCD) 또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사용하기 때문에 브라운관을 보기가 어렵다. 대략 20세기까지는 대체로 대부분의 모니터가 브라운관이었다. 브라운관은 음극선, 즉 전자의 흐름을 전기적으로 제어해서 화면의 원하는 위치에 도달시켜 빛이 나게 하는 장치이다. 이런 신호들이 모여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브라운관 구조

 음극선의 정체는 1897년 영국의 조지프 존 톰슨이 밝혀냈다. 톰슨은 음극선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음의 전기를 띤 아주 작은 입자의 흐름임을 규명했다. 이것이 전자이다. 전자의 발견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주제이고 과학사적으로도 굉장히 큰 사건으로 별도의 주제로 다룰 것이다. 재미있게도 음극선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음극선을 이용한 연구는 뜻밖의 놀라운 발견들로 이어져 20세기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 첫 번째가 바로 X선의 발견이다.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 크룩스관으로 음극선을 연구하던 중 우연하게도 정체불명의 어떤 ‘선(ray)’을 발견하고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X는 정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다. 당시 뢴트겐은 뷔르츠부르크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1845년생이니까 X선을 발견했을 때는 그의 나이 50이었다. 뢴트겐은 검은 마분지로 크룩스관을 감싸서 그 안에서 어떤 빛도 새어나오지 못하고 하고 음극선을 연구하고 있었다. 실험을 시작하자 시안화백금산바륨을 칠한 종이가 크룩스관 근처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크룩스관을 마분지로 완전히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어떤 빛도 새어나오고 있지 않았다. 뢴트겐은 형광지를 이리저리 옮기거나 중간에 두꺼운 책을 끼워 넣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크룩스관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X선은 두꺼운 책의 존재유무와 상관없이 형광지를 빛나게 했다. 마치 X선이 책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그때까지 알려진 음극선의 성질과는 전혀 달랐다. 음극선은 그렇게 투과력이 좋지 않았다. 뢴트겐은 책뿐만 아니라 나무나 고무 등도 X선을 막지 못함을 알아냈다. X선의 관통을 막기 위해서는 1.5mm두께의 납이 필요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새로 발견한 신비한 X선의 성질을 연구하던 뢴트겐은 문득 이 선이 사진건판을 감광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꺼운 책도 관통하는 선과 사진의 결합은 인류의 역사를 영원히 뒤바꾸었다. 바로 인체 속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X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초의 X선 사진은 뢴트겐 부인의 반지 낀 손이었다. 뢴트겐은 자신이 새로 발견한 미지의 선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1895년 12월 ‘신종 방사선에 관하여’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촬영한 최초의 인간 X선 사진뢴트겐이 X선이라는 새로운 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퍼졌고 의학적으로 엄청난 혁신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점을 즉시 알게 되었다. X선을 발견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지 불과 1년 만에 관련 논문이 1천여 편, 단행본이 50권정도 나왔다고 한다. 


X선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1910년 이후였다. X선은 자외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이다.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수천 배 정도 짧다. 그러나 감마선보다는 파장이 길다. 음극선에서 이렇게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가 나오는 이유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에 따른 것이다. 앞서 음극선의 본질이 전자의 흐름이라고 했는데, 전자는 원자 속에서 음의 전하를 갖고 있는 작은 입자이다. 외부에서 원자에 에너지를 공급하면 전자는 원래보다 높은 에너지 상태로 도약한다. 높은 에너지 상태의 전자가 다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면 그 에너지 차이만큼이 전자기파로 방출된다. 전자기파는 양자역학적으로는 일정한 에너지 덩어리를 가진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기도 하다. 보통 '광자'라는 입자적인 용어를 자주 쓴다. 광자가 갖는 에너지는 그 파장에 반비례한다. X선은 자외선보다 파장이 짧으니까 자외선보다 에너지가 크다. 진공관의 음극에서 나온 전자가 맞은편 유리벽에 부딪히면 자신이 갖고 있던 높은 에너지를 짧은 파장의 광자, 즉 전자기파로 방출한다. 이것이 X선이다. 파장이 자외선보다 짧아서 당연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서 X선을 이용해 수시로 몸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하게 과학자들은 X선을 이용해 고체나 유기물의 내부구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가시광선으로 보지 못하는 영역을 X선을 이용해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가장 유명한 성공사례를 꼽으라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것이다. 유전물질의 실체인 DNA의 분자적인 구조는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이 이중나선이라는 결과를 얻는 데에는 X선을 이용해 DNA의 내부구조를 찍었던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성 과학자의 공이 결정적이었다. 결정의 구조를 갖는 구조물에 X선을 투사하면 결정을 이루는 격자들 때문에 X선이 회절하게 되는데 이 결과를 이용하면 결정의 내부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를 X선 결정학이라 부른다. 프랭클린은 당시 최고 수준의 X선 결정학자였다.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도 같은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 


X선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 이하의 세계와 그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로서의 양자역학의 기본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 원리는 고사하고 정체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19세기 말에 우연히 X선을 발견해 인체의 뼈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어쨌든 놀랍고도 신기하면서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왔으니 인체에 해롭지만 않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는 하다. 물론 지금 우리는 X선이 방사선의 일종으로 몸에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몸에 어디 외과적인 이상이 있다 싶으면 곧장 병원에 가서 X선부터 찍어보고 공항에서도 가방을 열어보지 않고 X선으로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는 세상이니 지금도 X선은 우리 삶을 무척이나 편리하게 해 준다.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1년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X선의 발견으로 X선 자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졌지만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전혀 새로운 현상을 유발하기도 했었다. 이는 마치 진공관에서 음극선을 연구하다 뜻하지 않게 X선을 발견한 것과도 비슷하다. 하나의 우연하고도 새로운 발견이 또 다른 우연하고도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바로 이듬해인 1896년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이 방사능을 발견했고 그 위대한 마리 퀴리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1890년대 이미 과학의 모든 것은 다 규명되었고 새로운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완결의 공감대가 팽배했던 바로 그 시기에 과학자들의 뒤통수를 친 대표적인 발견이 X선과 방사능이었다. 이들은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물리학의 20세기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1895년에 시작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 모든 발견의 출발점이었던 음극선의 정체가 전자임이 밝혀진 것이 방사능을 발견한 이듬해인 1897년인 것도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놀라운 실험적인 발견들로 동트기 시작한 새로운 세기는 1900년 12월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 이론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왼쪽부터) 뢴트겐, 베크렐, 마리 퀴리. 뢴트겐의 X-선 발견이 베크렐의 방사능 발견에 영향을 끼쳤다 ※출처 : 2021년 8월 동아사이언스 (필자 : 이종필 교수)